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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로수 이야기

회피형 인간의 결혼생활 (산후 우울증)

by 크로수 2021. 9. 10.

애착 성향을 안정형, 불안형, 회피형 이렇게 3가지로 나누는데, 나는 회피형 인간에 가깝다.
회피형은 말 그대로 책임이나 속박을 회피하고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며, 힘든 일은 최선을 다해 미루고 싶어 하는.. 좀 사회성이 떨어지는 성향이다.

이런 내가 결혼한 지는 5년이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. 그리고 현재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이다..
왜 우울하냐고, 아이를 낳아서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. 내 새끼들은 치사량으로 사랑스럽고 아이를 보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소중하기도 하다. 결혼 전에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. 결혼 전에 썼던 일기에서는 불안하고 외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.


결혼 전의 나는 30대가 넘어가면서 안 그래도 몇 없던 친구들이 점점 나와 안 놀아줬기에.. 나는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공간을 찾아다녀야 했다. 그때는 밥을 혼자 먹는 것도 불안했다.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 혼자 있는 내가 점점 불안해졌다.. 이건 도대체 무슨 압박감이었을까?

남편을 만나고 신기했던 건 밥을 혼자 먹는 것이 불안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.. 마음 둘 곳이 생기니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. 결혼하고 고지식한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나는 나쁜 음식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게 됐고, 주말에 티브이 보면서 거실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. 결혼하고 분명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었고 결혼 전의 나보다 행복하다..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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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데 뭐가 불만이냐고 묻는다면.. 억울하다.. 아기 낳았으니 대접받고 싶은데 당연하게 해야 하고 안 하면 쌓여버리는 살림들이.. 애는 둘이 낳았는데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육아가.. 평생을 날 위해서만 살아왔었기 때문인지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억울하다. 결혼 전에는 누군가의 아내로, 며느리로, 엄마로 사는 삶이 싫을 줄 몰랐다.

남편은 도와주려고 노력하지만 말 그대로 도와주는 거지 집안 일과 육아는 내 몫이다.. 밥이 안 되어 있으면 남편과 아이들은 기다린다. 집이 지저분하면 지저분한 채로 생활한다. 나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. 나도 엄마 있다. 나도 청소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밥을 줄 때까지 기다렸었고 살림을 최선을 다해 피해 다녔는데 얍삽하게 살았던 벌인지 다 나의 일이 되었다.

첫아이의 육아를 돌아보면 행복하기도 했지만 체력 없는 나는 아팠다.. 그럼에도 둘째를 낳은 이유는 외동이면 아이가 외롭지 않겠냐며 아이가 불행해질 거 같은 불안을 주변에서 최선을 다해 나에게 불안을 심어놓았다.. 그렇게 남들처럼 두 아이를 낳고 살림하는 걸 내가 선택해놓고 돈도 없고 체력도 없는 나는 불안으로 떠밀려 선택한 내 상황이 한없이 억울하다. 나는 내가 감당할 일을 이렇게 벌리는 성향이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건가 누군가를 탓하고만 싶어진다.

 

근데 나는 나라는 인간을 안다.. 내가 책임질 일에 도망가고 싶은 거지..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남편을 만날 거냐면.. 만날 거다. 그때의 남편이 이뻤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받는 건 행복한 일이다.. 아무것도 책임질 일이 없던 삶이 그립지만 모자랐던 나는 오롯이 혼자로 사는 건 불안하고 공허했다.. 회피형을 타고난 나란 인간은 뭘 해도 불만인 인간인가 보다..

산후 우울증 때문인지 피할 수 없는 일들에 억울함을 섞어서 자꾸 반복해서 생각한다.. 나의 결혼생활은 불만도 가득하나 남편과 내 새끼들과 사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. 누가 그랬다 공부를 못해서 우울하면 그냥 공부를 하면 된다고.. 집안일 쌓이는 게 싫으면 집안일을 하면 된다..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니 좀 더 나이가 들고 육아에 벗어나게 됐을 때나 지금의 일상이 소중했다는 걸 알게 되겠지..

회사생활을 했을 때도 5년 차였을 때가 미친 듯이 퇴사하고 싶었던 시기였다. 지나고 보니 그때의 성취감이 그립다.. 어차피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다 지나간다..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행복해질 방법이나 고민해 보는 게 현명하겠지.. 우울함과 빡침에 지지 않으려면 우선 내가 맡은 일을 무리 없이 해야한다.. 힘들게 노력하고 익숙해지면 다시 필연적으로 행복해질 거다.. 오늘 하루도 애써보자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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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의 감사한 일.
눈뜨니 보이는 첫째가 세상 이뻤다
둘째가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다.
아침에 우유와 빵을 같이 먹으니 세상 맛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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